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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4.05.08. (수)

내국세

심사·심판청구에 조정제도 도입할 수 있을까?

현행 세법상 All or Nothing 구조…'대체적 분쟁해결 절차(ADR)​'​​​​​​ 필요성 커져

조정 사안 구체화하고 법령상 근거 명확히…과적·이의신청 단계에선 불필요

최정희 건양대 교수, 한국세법학회 추계학술대회서 도입 주장

 

"조세전담법원 신설 후에 도입…과세형평성 우려 도입 신중해야" 의견도 

 

과세관청과 납세자간의 분쟁시 어느 한 쪽의 일방적인 승소 및 인용으로 귀결될 경우 패소 또는 기각되는 일방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세법상 조정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같은 세법상 조정제도는 법원의 행정소송에 앞서 전치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조세불복 체계상 과세전적부심사 및 이의신청 보다는 심사청구와 심판청구에 보다 적합하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최정희 건양대 교수는 한국세법학회가 지난 20일 개최한 2023년 추계학술대회에서 ‘세법상 조정제도의 도입 가능성’ 주제발표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이와 관련, 2017년 행정심판이 청구된 사건에 대해 위원회가 조정을 통해 신속·공정한 해결을 도모할 수 있도록 행정심판법이 개정되는 등 행정절차에도 조정제도가 법제화돼 도입됐다.

 

최 교수는 이날 발표에서 “납세자의 실질적인 권익구제와 행정비용의 절감 등의 측면에서 조세사건에서도 대체적 분쟁해결(ADR) 절차의 도입 필요성이 꾸준하게 제기돼 왔다”고 환기했다.

 

대체적 분쟁 해결(ADR: Alternative Dispute Resolution)은 재판 외의 분쟁해결 제도로 조정·협상·화해·재정·중재 등이 포함되며, 이 가운데 조정(Mediation)은 분쟁 당사자가 서로 참여해 협상과 타협에 의해 조금씩 양보해 상호합의를 도출할 수 있도록 마련된 제도다.

 

최 교수는 “대국민 행정 행위에 조정제도를 도입하는 것에 대해 헌법상 재판청구권의 침해, 법치주의와의 충돌이라는 이론적 검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면서도 “헌법 제27조의 취지를 입법부에 대한 조정절차를 포함한 다양한 형태의 대체적 분쟁해결 절차를 인정하는 것으로 해석한다면 헌법상 재판청구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해석했다.

 

또한 “재판 제도가 법에 의해 이뤄지기 때문에 포괄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사례에 있어 기본권 보장의 확보라는 목적에 충실한 재판 외 분쟁 해결제도인 조정제도의 도입이 정당화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같은 이론적 뒷받침을 근거로 최 교수는 조정의 대상에 △행정심판법상의 조정대상과 범위규정처럼 조정에 적합하지 않는 사안 △제3자의 권리나 의무에 영향을 주는 사안 등은 배제해야 함을 주장했다.

 

아울러 불복 절차에 있어 조정제도 도입시 반드시 법령상의 근거를 두어야 함을 강조한데 이어, 이를 근거로 과세전적부심 및 이의신청이 아닌 심사청구 및 심판청구 단계에서 조정제도 도입이 합당함을 제시했다.

 

그는 “심사청구 및 심판청구 단계에서의 조정제도 도입은 행정심판법에 조정제도가 도입된 배경과 제3자인 전문가 조정인의 활용 용이성 측면에서 조정제도의 도입이 현재 가장 활용 가능한 선택지”라고 강조했다.

 

다만, 조세소송 과정에서의 조정제도 도입에 대해서는 장기적인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신중론을 제기했다.

 

최 교수는 “조세소송 단계의 경우 사실상의 조정을 ‘화해권고’라고 명명하고, 행정소송법의 개정으로 행정소송 절차에서 조정 또는 화해제도를 도입하자는 의견이 있다”며, “그러나 조정제도 본연의 취지를 고려해 본다면, 이 단계에서 조정제도의 법제화를 조금 더 고민 후 법령을 정비해 도입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밝혔다.

 

한편, 토론자로 나선 권형기 법무법인 평안 변호사는 실무적으로 이미 시행 중인 사법부에서 제도적 보완을 거쳐 조정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나, 재판부의 전문성을 감안할 때 조세전담법원을 신설한 후 이를 통해 조정제도를 시행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권 변호사는 “(과세전적부심과 이의신청 등) 과세당국에 조정제도를 둘 경우 자의적인 감면권한까지 부여하는 것은 면죄부를 주는 것이기에 인정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납보관에게 조정인의 역할을 맡기자는 주장도 있으나, 이 역시 납보관의 독립성과 소속직원의 순환보직 금지가 보장된다는 점을 전제로 한 것이기에 과세당국에 맡길 수 없다”고 과세당국의 조정제도 도입에 반대입장을 피력했다.

 

권 변호사는 또한 “조세심판원 또한 과세당국의 인사교류로 인해 국가의 입장을 대변하는 경우가 있다”며, “만일 조세심판원에 조정제도가 입법된다면 과세당국과의 인사교류가 명확하게 금지되어야만 납세의무자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조건부 찬성 입장을 개진했다.

 

감사원의 경우 사실상 제3의 기관으로 볼 수 있으나, 감사원 심사청구 유지가 적절한지에 대한 논의를 이유로 사실상 반대입장을 피력한 권 변호사는 “현실적으로 사법부에서의 조정은 현재 실무상으로 이뤄지고 있으나 법적근거가 충분하지 않기에 이를 보완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행정소송 단계에서의 조정제도 도입을 주장했다.

 

권 변호사는 다만 “재판부가 세법에 관한 충분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면 문제가 없으나, 그렇지 않고 조정절차를 강요하는 것이라면 오히려 국고의 손실 또는 납세자에게 피해가 갈 수 있다”며, “조세전담법원을 신설한 다음 세법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법관들이 조정절차를 활용할 수 있도록 입법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또다른 토론자인 이정렬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는 조정제도 도입에 신중론을 펼쳐, 조세법률주의와 조정제도가 추구하는 목적이 일견 상반될 수 있음을 제시했다.

 

이 변호사는 “조세법률주의는 법령상 근거와 그에 대한 엄격한 해석에 기초해야 한다”며, “이에 반해 조정제도는 법률관계와는 관계없이 분쟁 당사자가 양해하는 범위내에서 새로운 법률관계를 창설한다”고 밝혔다.

 

일례로 특정 납세자의 불복청구에 대해 조정절차가 성립될 경우 유사한 쟁점에 대해 불복절차를 제기한 다른 납세자들의 불만이 속출할 수 밖에 없는 등 세법상 조정제도의 도입은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과세형평성을 상당히 해칠 수 있음을 우려했다.

 

이 변호사는 “조세소송의 현실을 보면 조정 등을 통한 분쟁해결의 효율이 상당히 높다고 볼 여지가 있다”면서도 “다만, 특정납세자와의 조정과 화해가 조세법률주의 내지 과세형평성을 해치는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닌지, 조세소송에서 화해 내지 조정제도를 도입하는 명확한 법적근거가 있는지는 다시 한번 살펴보아야 한다”고 조정제도 도입에 신중론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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